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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헌

대아가족 창원주(故) 황대봉 명예회장

지역사회를 사랑하고 지역발전을 지향하는것이 대아가족의 경영이념입니다.

지역민에 대한 사랑으로 지역과 함께 발전하는 기업

지역의 발전을 선도하면서 지역과 함께 성장 발전해 가는것이 대아가족의 꿈이며 약속입니다.

대아가족 창업주 영암 황대봉 명예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핵임을 다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983. 학교법인 영암학원(세명고등학교)설립

당시 포항시 관내의 열악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7000여평의 부지에 3900여평의 학교 시설을 갖추어 남학생 18학급, 여학생 18학금, 총 36학급의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설립함. 이는 일반학교 2개교에 상당하는 규모이며 그 외 부속 건물로는 체육관, 기숙사 및 학생 식당 등을 갖추고 있고, 지금까지 12,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음.

1985. 재단법인 영암장학회 설립

사재 현금 20억원을 무상출연하여 학업성적은 우수하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선발하여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 오고 있으며, 설립당시 개인출연금으로 는 도내 최대 규모의 장학재단으로 설립함. 1985년 설립이후 1,300여명의 지역 고등학생 및 대학생에게 현재 30여억원의 장학금과 지역문화사업에 지원하고 있음.

1986. 영암도서관 설립

대도동에 사재를 돌여, 지역 청소년들의 보다 나은 학습공간 마련을 위해, 연건평 510평 의 열람실, 잘죠실, 사무실을 갖춘 350석 규모의 도서관을 건립 포항시에 기증하였으며 현재 “시립영암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음.

1986. 노인복지회관 건립

우리지역 어르신들의 사회적,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지역의 노인복지 증진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200여평의 노인복지 회관을 건립하여 포항시에 기증함.

1977. 죽도시장 확장사업에 기여

포항제철공장이 유치되어 포항시세의 팽창과 인구증가가 될 것을 예상하고 재래시장의 확장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 황대봉 명예회장은 당시 죽도재래시장을 배로 확장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구획정리사업 전문가를 데리고 와서, 토지일부가 갈대지역이고 야채밭 이었던 지역을 1971년 택지조성을 위해 조합설립 인가를 받고, 사업주(이석봉)에게 택지 를 소매시장으로 변경하는 것을 이해시키고, 1972년 소매시장으로 변경을 받아, 1977년 에 현대화된 상가형 시장으로 변경되어 규모가 본래시장 면적보다 배로 확장되어 시장 이 조성됨. 현재 전국 3대 재래시장으로 성장케 함은 물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 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음.

1974. 오거리 시민의 탑 건립

포항발전의 상징물로 포스코와 함께 지역발전을 기원하는 뜻으로 죽도오거리에 사재를 들여 상징탑을 건립하여 포항의 상징물이 됨. 지금은 교통혼잡으로 철거되고 신호등이 설치 운영되고 있음.

동빈대교 설계변경 건의

동빈동에서 송도를 연결하는 동빈대교가 당초 죽도어시장을 드나드는 어선들의 출입을 위해 “올리는 다리(승계교)” 로 설계되어 기공식까지 마친 상태였으나 건설규모가 너무 커 건설비는 물론 유지관리비에 막대한 시예산이 소여되어 예산낭비가 발생하는것을 우려하고, 또한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동안 주변 교통체증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어 현재의 형태인 구름다리(아치형)로 설계 변경할 것을 당시 정장식 포항시장에게 건의 하여 건설토록 함.

1999. 연오랑 세오녀상 건립

삼국유사에 기록된 포항의 설화인 “연오랑 세오녀”를 형상화하여 우리지역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케 하고자 사재 7억여원을 들여 호미곶에 그 형상을 건립하여 포항시에 기증함 으로서 지역 주민들에게 포항의 뿌리를 널리 알려 긍지와 자긍심을 갖도록 함.

2009. "연오랑 세오녀 연구" 개소

포항의 설화로만 전해오던 연오랑 세오녀가 실존인물임을 부각시키고 이를 좀 더 연구해 포항의 상징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연구소를 개설하여 지역문화의 부흥에 이바지 함은 물론, 신라의 농업 및 철기 문화를 전파한 이즈모시 간의 문화교류도 함께 활발해 짐에 따라 한, 일 문화 교류에도 일익을 담당함.

한민족 해맞이 축제 장소 유치 기여

2001년 1월 1월부터 시작된 한민족 해맞이 축제의 장소가 당초 강원도 정동진으로 거의 결정되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청와대 김중권 비서실장을 방문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 우리고장 호미곶임을 설득시키고 바로 이 사실을 정장식 시장에게 전하여 시장이 청와대를 방문하여 새천년 해맞이 국가 행사로 15억 예산을 받아 광장을 조성하는데 동기와 힘이 되어 호미곶이 해맞이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음.

2009.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송딕비에 새기다

침수지역이였던 낙후된 장량동지역의 발전 필요성을 일찍이 예견하고 이에 따른 도시기 반 시설조성에 노력해 온 결과, 이 지역이 도시지역으로 탈바꿈하여, 주민생활이 편리하 게 됨은 물론, 경북도내에서 최다 인구동으로 발전함에 따라 지역주민 일동이 그 공을 기리고자 송덕비를 세워 제막함.

1986. 포항공대신축공사 부지확보 일조

포항공대 신축공사부지 확보과정에서 이주민들과 대학측이 보상금에 합의하지 못하여 공사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을때 이주민들 의 요구사항인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황대봉 명예회장의 개인소유 체비지(대지)를 조성원가로 이곳 주민에게 제공함으로서 포항 공대건설에 따른 부지확보의 어려움을 해결하여 포항공대 신축공사에 도움을 줌.

포항-서울간 항공로 개설

포항-서울간 항공노선이 없어 불편을 겪고 있을때 당시 국회교통체신위원장을 비롯한 22명의 국회의원이 포항 현지를 방문하여 현황을 파악한 후 항로를 개설토록 함으로써 포항시의 오랜 숙원사업 이였던 항공노선 개설에 기여함.

포항역 부두사이 철로 철거에 일조

포항역에서 학산동 부두까지 놓여있던 철로가 포항의 북부지역 발전에 큰 장애가 되어 시민들이 10여년 동안 철로 철거를 국방부 및 철도청에 요쳥하였으나 유사시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시설을 이유로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아오던 것을 명예회장께서 국회 교체의원으로 재직시 포항상공회의소와 힘을 모아 중앙정부에 강력 건의하여 철로를 철거토록 함. ( 현재 롯데백화점 부지 일대)

송도해수욕장의 옛모습 복원과 포항시의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포항시청 청사 이전부지의 변경을 건의하였으나 이를 바로 잡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인해 한때 정들었던 이 고장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주민등록지를 서울로 이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황대봉 명예회장이 포항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포항지역발전협의회를 비롯한 많은 지역의 사회단체 및 시민들의 만류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시 돌아올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신 여러 단체회원분들과 시민분들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 포항이 바로 명예회장님의 출생지이고, 또한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이 지역의 발전과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여생을 보내신 마음이 바로 명예회장의 평소 생각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